마음만은 건축주

정동길을 걷다

날짜
2024/10/23
활동
작성자
아녜스의 기록 ”건축학교 정동길을 걷다 10월 23일 저녁 5시-7시
정동길을 걷기 위해 7명이 모였다. 집앞 마실로 나온 사람도 있었는데 나는 이 길을 이렇게 또박또박, 이리저리 길을 잃어보며, 오래된 나무들을 지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보물찾기 시간. 정동길보다 이런 나한테 놀란 시간이었나? 그동안 나는 어디서 뭘 하면서 지냈던 거지?
걷지 않고 만나보지 않고 가까이 가만히 오래보지 않고 내 몸에 이 시간들이 고스란히 새겨지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하지만 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걷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2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
그 길위에 참 많은 이야기가 쌓여, 지금을 관통하는 시간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건축물이 보존되어서가 아니라 삶이 계속되어서.
중명전의 회랑과 기둥과 잔디가 된 수영장, 다시 와야 할 은행나무, 정동제일교회의 지붕과 배재학당의 창문, 신아빌딩의 벽돌과 기록, 서울시립미술관의 보존된 앞모습과 보수된 내부의 안타까운 부조화까지, 100년 전 한 나라의 격변의 시기에 누구의 손을 거쳐, 어떤 이야기를 지나, 무엇과 무엇이 만나 이런 공간이 되고, 시간을 거쳐 결국 오늘 나의 일부가 되었는지,
우영이형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걸었던 어제의 풍경이다.
한 나라를 침범하고 침범당한 기록, 거기서 새로운 것이 시작된 기록, 그 기록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일을 하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그릇을 팔고 그림을 보고 술을 마시고 출퇴근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에 연탄구이(지금은 부탄가스구이가 된) 고추장 불고기와 쭈꾸미를 먹고 맥주 한 잔으로 걷는 시간을 마무리했다.
가을에 걸어야 하는 이유가 있구나. 온통 노란 은행 잎으로 덮이게 될 2주후에 꼭 다시 와야지. 오늘 일어나 어제를 보니 어제의 시간이 더 생생하다.
건축학교의 여운은 길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어지는 것은 내 몸에 새겨지고 하루 더 살아진 그 시간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