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by 댄비 (c) www.dancewithbees.com
우영이형의 모임 공지
“여섯번째 건축학교,
화성에 있는 남양성모성지 입니다. 공간이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어깨를 다독거린다면 이곳일 겁니다. '영혼의 건축가' 마리오보타의 건축물과 '땅에쓰는 시' 정영선 조경가의 손길이 궁금합니다.
11월9일 오전10시!
가을이 가기전에 마음이 바쁩니다”
자연스의 기록
”쫑긋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앉아있는 귀여운 토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귀를 따라 빛이 내려갑니다. 도착한 곳에서는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모습이 있습니다. 화려한 채색이 아니지만 담담하게 또렷하게 말하고 있어요 예수의 모습도 비율이 좋은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청년의 모습보다는 고통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소중한 뜻이 있다는 말을 하는 모습입니다.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내게 상체를 기울이고 무언가 말할 것이 있다는 모습입니다.
토끼의 안락하고 따뜻한 복부에는 신도들의 의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의자의 경사가 그런 마법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예수와 내 영혼의 대화. 그 기분은 매우 밝고 포근하며 음성과 음악이 아름답고 또렷하게 들립니다. 하늘에 뚫린 여려개의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나무들 사이를 지나오기에 밝지만 부드러운 것 같습니다. 믿음이 자라는 이 곳에 신도가 아니라도 다시 오고 싶은 곳입니다. 공간이 주는 위안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꽃이피다의 기록
“이보다 좋을순 없다.
감동으로 충만했던 하루였어요.
오며가며 자연스님과 함께 마리오보타 다큐를 감상하면서
왜 이상각 신부님이 보타에게 성당을 의뢰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저는 냠양성모성지를 몇번 가봤는데 새성당을 짓고는 처음이었고 퍽 궁금하던 차였어요.
새 성당 조감도를 보면서 이 큰 기둥이 이 멋진 자연과 조화로울 수 있을까 궁금했었어요.
근데 아! 정말 감탄과 감동이었습니다. 저 자리에 저렇게 성당이 세워졌다는것이 경이롭기만 했습니다.
너무나도 완벽한 하루였어요.
사진은 중복되지 않을것 같은 걸로 엄선해서 올립니다
”
댄비의 기록
(c) 그림 by 댄비 www.dancewithbees.com
“구름 없이 맑은 날
조금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선 덕분에
정문 옆 주차장에 어렵지 않게 차를 세우고
사람들과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가볍게 길을 오른다
남양성모성지
오천 명의 순교자들이 신을 믿었다는 이유로 참수를 당한 곳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빛을 따라 나뭇잎들이 노랗게 붉게 선명하게
말을 하듯 해
건축가의 걸음을 따라
이건 훌륭한 조경가의 솜씨
이건 겁이 날 만큼 놀라운 건축가의 솜씨
나는 사람의 손길이 덜 느껴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우연한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인간이 발견한 것들을 놀랍도록 발휘한 이곳을 보니
손에 불끈 힘이 쥐어져
이리 와 보세요
이곳에 도토리가 모아져 있어요
이곳에 살고 있는 다람쥐가 모아 두었나 봐
말하는 사람 신발 위로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았다
우리가 길을 가면 노랑나비가 팔랑거리며 쫓아와
그 사람들이 살았을 적은 어땠을까
다람쥐가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잠자리가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나비가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꿀벌이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순교자들도 바랐을 거야”
2024년 11월 9일 토 남양성모성지
댄비건축학교”
아녜스의 기록
“나는 마리오보타가 지은 성당이 궁금해서 따라갔는데 사실 더 오래 가슴에 남은 건, 자연의 법칙대로 세월을 두고 지어져왔고 아직도 지어져가고 있는, 시간과 사람을 그대로 담은 성지, 그 모든 어우러짐 자체였다.
5천 명의 삶이 그대로 묻혀있는 땅에 나무를 심고 풀을 뽑고 길을 만들고 기록을 더하며 자라나고 모두에게 위로가 된 그 터에 햇볕이 내리고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녹는 동안 모든 푸르른 생명은 자라고 이 따스한 공간을 서로 함께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날은 온통 빛이 가득했다. 그 빛을 테마로 성당에 세심하게 십자가를 세우고 기도하는 머리들 위에 따스한 햇살이 내려오게, 걸어 올라가고 내려가는 계단 한 줄도 허투루 거기 있지 않도록 얼마나 심혈을 기울인 것인지 우영이형을 따라 걷고 들으며 공간을 탐험했다. 건축물이란 빛의 역학이구나.
성당이 아니었다면 이 성지를 따로 찾아오지는 않았을테니 마리오보타의 작품도 분명히 역할은 하고 있을테지만, 나무 한그루도 허투로 심겨있지 않은, 정성이 가득한 이 공간이 그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40년 가까이 치유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지를 가꿔왔다는 이상각 신부가 무척 궁금했다. 또 정영선 조경가구나, 그녀의 천재성은 한결같음, 생명에 대한 존중이겠지, 자연속에 시간을 설계하는 그녀를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무엇보다 여기 온 삶을 바쳤다는 이상각 신부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무척 궁금해졌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저마다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
나는 성당에서 기도하지는 않았다. 그냥 모든 곳이 따뜻하게 우리를 감싸 안아주는 그 시간의 공간을 마음껏, 좋아하는 사람들과 평화 가득한 마음으로 누렸다. 이것이 기도였을까.
가을은 절정이었다. 하늘은 너무도 푸르러 어디가 하늘이고 바닥인지 구분도 가지 않을만큼 비현실적이었다. 세상 이렇게 아름다운 기계실을 보았냐며, 그를 따라 기계실 옆 계단으로 비집고 올라기니 우리만의 전망대가 나왔다. 이 성지를 가장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숨겨진 공간까지 누리면서 함께 온 사람들이 있어서 더 따뜻한 토요일 아침을 그렇게 보냈다.
희한한 일이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공간의 경험은 더 생생해졌다. 내가 느낀 것이 무엇이었는지,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는 이상한 경험이 진행 중이다. 우영이형의 건축학교.”